[중부내륙종단트레일]
관절염·족저근막염 있는 내가 170km를 걸었다
유영희
어린이와 청소년 대원도 참가했다.“렛츠!” 단장님이 외치면
우리의 구호는 언제나 하나다. “가자!”
길 냄새를 맡으며 가다 보면 멋진 낙동강 비경을 만나 더위도 잊은 채 잠시 서서 감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이 이렇게 많았다니. 밥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 길 한 켠에서 먹는 점심이지만 함께 온 오이냉국에 감사, 감탄 연발이다. 오이냉국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어린 대원 둘은 생각보다 훨씬 잘 걷고 의젓했다. 서로 챙겨가며 끝까지 걸어 내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이미 훌륭한 개척대원이다. 피곤에 지친 저녁 시간이면 아이들은 아이돌이 되어 대원들의 활력소가 돼 주기도 했다. 트레일러 박O수 샘이 그랬다. 뜨거운 햇볕에 곡식만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익었다고. 이제 우리는 웬만한 불편함쯤은 참아낼 줄 알고 일상의 작은 것에 더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 길을 만든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 길은 아이들을 부쩍 성장하게 했고 어른들을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
심장을 뛰게 한 ‘개척’ 이란 두 글자
나는 사실 걷기에 매우 부실한 몸이다. 조금만 걸어도 재발하는 족저근막염과 이미 관절염 판정을 받은 무릎 통증, 그리고 여름에 더 괴로운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땡볕에 오래 걷거나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하고 싶었다. ‘개척’이라는 말은 내 심장을 뛰게 했다. 길을 만든다니 너무 멋진 일이 아닌가! 비록 내가 걷는 길이 지금은 지도에 나타나는 한 줄 선이겠지만 언젠가 또 다른 사람들을 나서게 하는 멋진 길이 될 테니까. 그래서 출발 전에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근막을 튼튼하게 해준다는 약도 지어 먹었다.
햇빛 알레르기 연고와 약도 미리 처방받았다. 테이핑한 무릎 위에 무릎 보호대를 하고, 그러고도 아파 오면 바지 위로 한 번 더 보호대를 둘렀다. 폭염의 날씨, 마스크와 모자, 양산으로 최대한 가리고 길을 나섰다.
저녁에는 발바닥 마사지를 하면서 ‘고맙다, 애썼다’하며 조금만 더 버텨 주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보다 잘 걸었다. 걸으면서 치유가 된 느낌이다. 싱그러움 가득한 초록 능선에서 비탈을 돌아 마을로 내려오며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얼마나 넘어지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녀 지금 같은 길이 만들어졌을까?
버텨준 발에게 저녁마다 ‘고맙다’ 인사
힘들게 덤불을 빠져나오다 뒤돌아 봤을 때 생긴 가느다란 길의 모습을 보며 또 이 길을 따라 걸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나는 지금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뿌듯함이 올라오는 순간이다. 전에는 생각지 않던 일이다. 길은 그저 길일 뿐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길은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길은 먼저 지나간 이의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설레고,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해냈다. ‘혼자’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이었지만 ‘함께’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원들은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고 응원하며 끝까지 함께했다. 언젠가 이 길을 다시 걸을 때 우리가 매어 놓은 중부내륙종단트레일 노란 리본을 본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어 낸 멋진 길이니까. 그리고 2023년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서 나를 불태우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 잊지 못할 길이니까.
테이핑을 하고 파스를 붙이면서도, 끝내 완주했다.
그렇게 도착한 청송의 하늘은 참 맑았다. 너무 희귀해서 보기만 해도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무지개구름이 우리의 마지막을 축하하고 응원해 주는 듯했다.
중부내륙트레일 개척단 활동을 마치고 오랜만에 동네 산을 갔다. 해발 몇 미터랄 것도 없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혼자서, 여럿이서, 어떤 이는 맨발로 걷기도 하고 산길에 활력이 넘쳤다. 길을 길답게 만드는 것은 역시 사람이구나!
10여 년 전 혼자서 걷다가 멈추었던 지리산둘레길이 생각났다. 그 길을 마저 걸어야겠다. 아마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훨씬 더 감사한 마음으로 걸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더니, 밴드에 박승기 단장의 글이 올라왔다.
‘다대포까지 260km 남았습니다.’
다음 구간 걷기를 예고하는 글이었다. 곧장 댓글을 적었다.
‘불러만 주세요. 저는 준비됐습니다. 아프면 다녀와서 치료하면 됩니다!’
월간산23년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