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둘레길 개척]
탐험가가 된 잊을 수 없는 4박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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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예찬(의정부 송현고1학년) 사진 사단법인 다움숲설악산 둘레길 개척 나선 7명의 청소년들 화암사에서 상복리까지 36㎞ 걸어
사단법인 다움숲 생태문화숲길연구소는 8월 9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둘레길 개척을 진행했다.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의 답사를 통해 대략적인 둘레길 65㎞를 선정했으며, 사전 신청을 통해 7명의 청소년 대원이 주인공이 되어 둘레길 확정을 위한 개척 걷기를 했다. 지도 교사들과 대원들은 강원도 고성 화암사를 출발해 설악산국립공원 경계를 따라 속초와 양양 오색약수를 잇는 외설악 쪽 둘레길을 걸었으며, 계획된 둘레길 80km 중 36.5km를 걸었다.
안예찬(고1), 김성준(중3), 김솔원(중2), 윤서준(초등5), 안예울(초등4), 강해나(초등4), 윤서현(초등3) 청소년 대원이 참가했으며, 지도 교사로 다움숲 민병순 대표, 박승기 지도교수, 김미란 숲치유사, 박미연 숲해설가가 함께했다. 우리의 길을 함께 걷고 만들어간 4박5일의 이야기를 전한다._다움숲 박승기 생태문화숲길연구소장
8월 9일 화암사·신평2리(5.5km)
설악동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식사 후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했다. 첫날은 가볍게 걸었다. 길도 걷기에 딱 좋았고, 주변 풍경도 예뻤다.
오랫동안 머무르지는 못했지만 화암사도 볼만한 곳이었다. 길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다만 날씨가 걷는 것을 힘들게 했다. 첫날 일정의 유일한 오점이 날씨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녁식사를 한 다음, 설악산둘레길 전체 코스 설명과 지도 보는 법과 독도법을 배웠다. 하루를 되돌아보며 평가 시간을 가졌고, 도보 시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인 설악산둘레길 개척에 동참한다는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10일 신평2리·장천마을(9.5km)
시작은 더위였다. 아침식사를 하고 숙소를 나서자 힘 빠지게 하는 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더웠고 동시에 습하기까지 했다. 출발 지점으로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에어컨 바람을 쐬니 높았던 불쾌지수가 급감했다. 미시령 정상에 핀 무지개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울산바위 역시 웅장하고 멋있었다. 무지개를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지금의 느낌을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오늘의 걷기는 ‘익스트림Extreme’과 ‘어드벤처Adventure’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덥고 습한 날씨뿐 아니라 길도 심상치 않았다. 진흙이 가득한 땅을 걸으면 신발은 진흙 범벅이 되었고, 수풀 사이로 뚫고 들어가면 얽히고설킨 나무가시들이 날카로운 가시를 내밀고 있었다. 풀에 붙어 있거나 날아다니는 벌레들은 전문 도보 방해꾼들이었다.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결국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걷기가 완성되었다. 오전에는 걸으면서 마치 내가 탐험가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풀 속을 헤치고 가면서 나뭇가지를 피해서 걸었던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 진정한 ‘설악산둘레길 개척’이었다.
여태껏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라는 이름을 얻은 친절한 길만 걸었다. 하지만 오늘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우리가 개척한 불친절한 길을 걸음으로써 진정한 걷기의 재미를 깨닫게 되었다.
지도와 배낭 하나 챙겨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개척이 주는 진정한 재미가 아닐까? 오후에는 비가 내려서 오전보다 더 힘들었다. 그래도 오후 도보 일정까지 무사히 마쳤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저녁식사를 한 뒤 둘째 날 전체를 되돌아봤다. 힘들었던 만큼 재밌었고 얻어가는 것도 많았고, 오래도록 기억될 날이다.
11일 장천마을·속초소방서·노학동(6.5㎞)
시작은 ‘안정’이었다. 전날이 워낙 힘들어서인지 3일째 되니 편해진 것 같았다. 이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오전에는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고, 점심식사 이후부터 걷게 되었다. 날씨는 여전히 별로였지만, 한참을 걸어 노학동 시내에 도착했을 때 편의점에서 사먹은 아이스크림은 너무나 달콤했다.
더위에 지쳐 있던 육체를 한 번에 진정시키는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뒤 차로 이동해 숙소 근처에서 내려 상도문 돌담길을 걸어서 둘러보고 숙소로 들어왔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걸었기에 이날도 뇌리에 잘 남아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와서 박승기 지도 교사님의 스포츠테이핑 관련 설명을 들었다. 스포츠테이핑이란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테이핑을 하는 것이다. 왠지 설명을 듣고 있으니 발바닥과 발목 쪽이 아파오는 듯 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며 도보에 임하게 된 날이었다.
12일 노학동·청대산·대포동(8.5㎞)
설악산에서의 여정이 끝을 향해 간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익숙해진 숙소와 익숙해진 산길, 그리고 다가오는 설악산과의 이별. 이제 끝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오전 도보에 나섰다. 오전 도보는 정말 걷기의 연속이었다. 산길도 타며 계속 걸었다.
여전히 더웠고 힘들었지만 이미 익숙해져 있어 덜 힘들게 느껴졌다.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오르고, 또 다시 올라 청대산 정상에 도착했다. 잠깐 휴식을 취한 뒤 하산했다. 산에서 내려와 주먹밥을 먹고, 기운을 내서 다시금 걸었다. 이후 도보를 다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래도 너무 더운 날씨에 걷다 보니 더위를 먹은 것 같다. 씻고 나와서 계속 누워 있었다.
다른 청소년 대원들은 걸었던 길을 회상하며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 작업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아쉬웠다. 밤에는 양양문화원 김광영 선생님이 오셔서 대금으로 ‘아리랑’을 연주해 주셨고, 양양에 관한 역사와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하지만 머리가 아픈 것 때문에 제대로 집중해서 듣지는 못했다.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13일 대포동·설악동·상복리(6.5km)
5일차의 시작은 ‘종결’이었다.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종결. 4박5일의 여정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오전에 걷기를 했지만 길 자체도 앞서 걸은 코스보다 길지 않았고, 집에 간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너무나 평화로운 기분 좋은 길, 4박5일 내내 힘들게 했던 날씨, 벌써 정이 든 숙소가 생각났다.
여러 생각을 하며 길을 걸었고, 오전 도보 일정이 끝난 뒤 짐을 쌌다. 이젠 이별인 것이다. 그렇게 짐을 가지고 나온 나는 “어딜 가냐”고 쏘아붙이는 것만 같은 뜨거운 햇빛을 마주했다. 너무 뜨거웠고 정말 뜨거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차에 짐을 실은 뒤 출발했다. 산악박물관에 들러 전시물을 구경했다. 1시간가량 구경을 마치고 진짜 집을 향해 출발했다. 어느새 차는 그리웠던 집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의 여정은 끝이 났다. 참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생각을 했던 4박5일이었다.
출처 월간산
22년04.